김아영 UNIST 특임교수가 짚은 AI 시대 창의성의 조건
"수많은 가능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놓친 질문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
대표작 2편 상영·작가와의 대화, 지역 예술고 학생 등 150여 명 참석
빠른 답보다 스스로 묻는 힘 중요해… GRIT인재융합학부 방향 제시
UNIST가 세계적 미디어아티스트 김아영 특임교수의 작품 상영과 대담으로 창의성의 조건을 짚었다. 답을 빨리 찾는 능력보다 기술·사회·인간의 관계를 묻고, 이를 자기 질문으로 바꾸는 힘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였다. UNIST는 28일(목) 오후 대학본부 대강당에서 ‘UNIST 오픈스테이지(Open Stage) 2’를 개최했다. 주제는 ‘확장하는 이야기와 가능세계들: 김아영 작가와 함께 보는 AI 시대 상상력’이었다. 이날 행사에는 UNIST 구성원과 울산예고·부산예고 학생 등 150여 명이 참석했다. 프로그램은 김 특임교수의 대표작 상영, 작가와의 대화, 관객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상영작은 ‘딜리버리 댄서의 구’(2022)와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2020)였다. 두 편은 각각 플랫폼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도시와 화석연료가 고갈된 미래의 해저 연구소를 무대로 삼는다. 관객들은 영상 속 세계를 통해 노동과 이동, 기후 위기와 이주, AI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재편하는지 들여다봤다. ‘딜리버리 댄서의 구’는 가상의 서울을 배경으로 AI 알고리즘에 통제되는 배달 플랫폼 최상위 라이더를 그린다. 속도와 효율이 모든 기준이 된 도시에서 인간의 신체와 선택은 어디까지 자기 것일 수 있는가를 묻는 사변적 서사다. ‘수리솔 수중 연구소에서’는 가까운 미래 부산 오륙도 해저를 배경으로 한다. 다시마를 재배·발효해 바이오연료를 만드는 수중 연구소에서 이주 여성 연구원과 운영 AI가 대화를 나눈다. 기후 위기, 디아스포라, 팬데믹의 기억이 겹치며 기술은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생존 방식과 감각을 바꾸는 조건으로 제시된다. 이어진 작가와의 대화에서 김 특임교수는 두 작품의 출발점과 세계관을 구축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제 예술 작업에서 기술은 인간의 일상 감각과 이동, 노동의 조건을 바꾸는 환경”이라며 “수많은 가능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놓친 질문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슈미트 해양 연구소의 ‘아티스트 엣 시’ 레지던시 경험도 소개됐다. 김 특임교수는 심해 생물학자, 엔지니어들과 연구선에서 생활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적 관찰이 예술적 서사로 옮겨지게 될 과정을 전했다. 그는 “과학은 세계를 정밀하게 읽고, 예술은 그 관찰이 열어놓은 가능성을 전혀 예상치 못한 관점으로 표현한다”며 “두 영역이 만날 때 새로운 문제의식이 생긴다”고 했다. 질의응답에서는 작품 속 AI의 역할, 가능세계 설계 방식, 과학자와 예술가의 협업 과정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영상, 서사, 퍼포먼스, 과학기술이 결합되는 미디어아트 작업 방식에 관심을 보였다. 행사에 참석한 한 학생은 “AI를 단순한 도구로만 생각했는데, 작품을 보며 기술이 사회와 인간의 선택을 바꾸는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앞으로 작업이나 탐구를 할 때도 기술이 무엇을 가능하게 하고 무엇을 가리는지 먼저 찾아보고 싶다”고 전했다. 김 특임교수는 영상, 설치,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서사성, 이주, 기술, 비인간 존재, 가능세계를 탐구해온 작가다. 뉴욕현대미술관, 테이트 미술관, 베니스 비엔날레, 베를린 국제영화제 등 세계 주요 무대에서 작품을 선보였으며, 2023년 한국인 최초로 프리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골든 니카상을, 2025년 LG 구겐하임 어워드를 수상했다. ‘UNIST 오픈스테이지’는 GRIT인재융합학부 신설을 계기로 마련된 공개 프로그램이다. 이 학부는 학생이 전공과 교육과정을 직접 설계하는 미래형 교육 모델이다. UNIST는 2027학년도부터 ‘GRIT인재전형’을 통해 신입생 10명 내외를 별도로 선발할 계획이다. 박종래 총장은 “김아영 특임교수의 작업은 과학기술이 바꾸는 현실을 가능세계로 넓히고, 그 안에서 새로운 질문을 세우는 창의성의 힘을 보여준다”며 “UNIST는 과학기술 인재들이 예술적 상상력과 인문학적 사유를 더해 연구와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교육의 폭을 넓혀가겠다”고 밝혔다.